어떤 여행이야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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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이탈리아 #1] 2002년 12월 3일. 산타루치아 역에는 비가 내렸다 - 베네치아 ①
 미쯔    | 2008·10·08 06:54 | HIT : 6,853 | VOTE : 2,096
 

2002년 12월 3일


아침 7시 반.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하였다.


항상 긴장하고 탔던 야간기차지만, 어젯밤엔 지킬짐이 없다는게 조금은 허전하였었다. 그래도 뭔가 있는 모양, 내가 탄 컴파트먼트(3인용 쇼파처럼 생긴 긴의자 두개가 마주보고 놓여있는 6인실 기차칸)의 닫힌 문 사이를 넓은 테이프를 붙여놓고 작은 배낭을 베개삼아 베고 잤었다. 의자 밑에 아무렇게나 두었었던 간식거리(빵,과자,물 등)가 든 비닐봉지도 자다말고 일어나 다시 살며시 들어 머리맡으로 옮겨 놓다가, 그런 나의 행동에 내가 우스워져서 웃음이 났었다. 갖고 있는게 별로 없으니, 이젠 별게 다 소중하게 느껴지나보다. 문에 단단히 붙여놓은 테이프 때문이었는지 어땠는지, 나는 간밤에 생각보다 편히 잠을 잘수가 있었고, 베네치아 도착하기 직전에 일어나 기차안 화장실에서 새로 산 치약으로 여유있게 이를 닦고, 세수도 하고, 까칠해진 얼굴에 조금 남은 로션까지 손바닥에 탁탁 두드려 바른 후 가볍게 베니스의 땅을 밟았다.


물의 도시, 운하의 도시라더니...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마자 바로 앞에는 초록빛 운하가 흐르고 있었고, 그 운하위로 다른 도시의 버스와 같은 한다는 바포레토(수상버스) 몇 척이 역 앞을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가 오고 있었다.

 

▲ 오른쪽 하얀 긴 건물이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기차역. 역 바로 앞에 바포레토 정류장 두개가 연달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이고, 운하위로 운행하고 있는 바포레토가 보인다. 사진은 당시에 찍은게 아니라, 그로부터 5년여후 2008년 1월,  세번째 베네치아를 갔을때 찍은 것. 2002년 12월 3일의 아침은 이런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었다. 마침 이 사진을 찍은 날도 날은 흐려서 2002년도의 분위기와 비슷하긴 하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는 없었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곳 중 한곳을 고르려고 가이드 북을 펼쳤다. 어느 도시를 가든 항상 기차역에서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유스호스텔을 골랐었는데, 이번엔 기차역에서 걸어갈 만한 숙소가 없었다.(지금이야 유스호스텔 정보도 더 많아졌고, 베네치아에도 다른 유럽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역근처든 역근처가 아니든 여기저기 한인민박도 굉장히 많아졌지만, 때는 2002년도라 한인민박은 커녕 유스호스텔 정보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또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가 모두 ‘바포레토 **번을 타고 **** 역에서 내려 왼쪽으로 조금 걷는다’ 류인지라 그것들이 기차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물론 바포레토 노선도를 열심히 들여다 보면 게중 어느 숙소가 역에서 가까운지를 대충은 찾아낼 수는 있었겠지만, 바로 하루전 배낭을 송두리째 도둑 맞고, 이틀 연속 야간기차에서 잠을 잔 사람의 컨디션으로는 그럴 여유까지는 생기지 않는다. (사실 아주 노선도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


어쨌든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샤워였으므로, 지금 당장 체크인을 할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저렴한 숙소중 카톨릭 제단에서 운영하는 여성전용숙소를 골랐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출입이 제한된다고 써있지만, 지금 시간이 7시 30분이니, 지금 서둘라가면 8시까지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고, 출입제한이 시작되는 9시 전까지는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올수 있을 것이다. 숙소로 가는 노선의 바포레토를 탔다.

▲ 바포레토 정류장에서 바포레토에 오르는 사람들 풍경. 역시 2008년 1월에 찍은 사진. 구글리 역.

바포레토를 타는 기분은 참으로 독특했다. 아니, 베네치아라는 이 물의 도시 자체가 이제껏 보아온 도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어서 그런지, 모든게 독특하게 느껴지고 흥미로웠다. 단지, 비가 오고 있어서 였는지, 바다 바람 때문이었는지, 조금 으슬으슬한 한기가 느껴졌다. 무언가 상실한 내 옆에 그것을 위로해줄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는게 더욱 추위를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 바포레토를 타고 가는 사람들 풍경. 이것은 2007년 6월. 두번째 베네치아 여행때 찍은 사진.

바포레토에서 내린후, 숙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You are lucky. You are lucky"하며, 한 수녀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무엇이 ‘lucky'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Hello!" 하고 인사를 한 후, 지금 당장 체크인을 할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가이드북의 정보가 잘못되었는지, 수녀님께서는 체크인은 지금 안된다고 하셨다. 대신 가방은 맡아줄테니, 가방을 맡겨놓고 나가서 구경하다가 오후에 다시 들어와 체크인을 하라 하셨다. 그러면서 물어보신다.


“근데... 가방은 어딨어요?”


--; 그러게요.. 어디 있을까요. 내 가방은...


“기차안에서 잃어버렸어요.”


“아니 어쩌다가!”


“누가 훔쳐갔데요.”


“이런, 무엇 무엇이 없어졌어요?”


수녀님께선 좀 놀라신것 같았다.


“이것, 저것... 옷이랑, 책, 샴푸... 뭐 이런것들....”


“그럼 수건도 없어요?”


“네”


“비누도 없어요?”


“네”


“돈은 있어요?”


--;


“네, 다행히 돈은 있어요.”


내가 숙박비도 못낼까봐 그러셨는지, 아니면 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그러셨는지,(물론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몇가지를 더 물어보신 수녀님께선 화장실과 식당(탁자와 의자만 있는)을 보여주시며, 이 두 곳은 지금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지금 시각 8시 반. 체크인이 안되어 어차피 샤워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어딜 가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복도에 있던 커피 자판기에서 60센트짜리 카푸치노 한잔을 뽑은 후 식당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늘은 또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커피맛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느끼던 중에 어딘가로 가셨던 수녀님께서 무엇인가를 들고 내가 있는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수녀님이 가지고 오신 것은 우리나라 내복같기도 하고 잠옷같기도 한 꽃무늬 하늘색 폴리에스테르 바지와, XL 사이즈 태그가 붙은 반소매 면 티셔츠 2장, 그리고 2장의 수건이었다. 아.... 나는 정말 고민했었다. 과연 오늘 샤워후에는 무엇으로 몸을 닦아야 하며,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하고... 하늘색 꽃무늬 자글자글한 잠옷같은 바지는 아무리 실내에서 입는 용도라고 해도 너무 촌스러웠고, 반소매 티셔츠는 내가 입으면 긴소매 티셔츠가 되어 버릴 정도로 커보였지만, 무언가 갈아입을 옷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상황이었다. 수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옷들은 여행객들이 흘리고 가거나 두고 간 것을 깨끗이 빨아 두었다가 나중에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거라고 하셨는데... 불쌍한 사람... 불쌍한 사람.... 흠... 조금 야릇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사실 나는 지금 쫌  불쌍 하니까.


그것들을 들여다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수녀님께서 이번에는 곰팡이 간간히 피어나고 있는 실내용 슬리퍼와 내 발에 맞지도 않을 신발까지 한 켤레 가져오셨고, 조금 더 있자니 또 다른 수녀님께서 아예 커다란 종이 박스 하나를 들고와 내 앞에 펼쳐 놓으시는데... 그 안에는 여행객들이 쓰다 두고 간, 샴푸, 비누, 로션, 머리빗 등이 가득 했으며, 그중에는 놀랍게도 한국 제품인 더블리치 샴푸, 린스 샘플과 내가 한국에서 쓰던 것과 같은 브랜드의 바디크림, 그 외 각종 화장품, 머리핀까지 들어 있었다. 필요한게 있으면 다 챙겨 넣으라는 수녀님의 말씀에 눈알이 핑핑 돌 지경이다. 머리빗도 필요하고, 날씨가 건조해서 자꾸 살이 트니 바디로숀도 필요하고.......몇가지를 챙기다 보니, 내겐 이것들을 넣을 가방 또한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 근데, 이근처에 저렴하게 가방을 살만한 곳이 있을까요?”


“아.. 가방도 없죠?”


다시 어딘가로 가시는 수녀님. 이번엔 테니스 가방처럼 생긴 직육면체 모양의 검정색 가방을 하나 들고 오셨다. 어느 일본 여행자가 두고간 것이라고 했다. 정말 감동의 생필품 릴레이다.


“그라치에, 그라치에”


수녀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고른 물건들을 집어 넣은 검정색 가방을 식당 한켠에 놓아 둔후, 오늘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나는 다시 내 작은 배낭만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베네치아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의 첫 베네치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02년의 비오는 겨울이었다.

 

▲ 2002년 12월. 비내리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앞.

비더윤즈
와- 마지막 사진은 무슨 보그지의 한면에 실려져 있을법한 멋진 사진인것 같습니다.
배낭잃어버리고 도착한 도신데 비가와서 안개까지 자욱하니 얼마나 마음이 더 쎈치했었겠어요!
게다가 베네치아라 .. +ㅁ+
근데 여행을 하다보면 힘들때 어딜가나 저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은 꼭 있는것 같아요-

08·10·08 15:05

양지연
베니스 가기전과 다녀오고 나서의 사진과 글은 그 감흥이 정말 다르네요.

08·10·09 17:41

미쯔
그래서 여행이라는게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TV나 책에서 대충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한번 관심있게 들여다 보게되고 말이죠. 저 또한 어디선가 베네치아 관련된게 나오면 꼭 한번 들여다 보게 되니까요. ^^

08·10·09 20:03

심뻐꾸
행운아에서 졸지에 구제민이 되어버린 아침이였네요^^ 앞으로의 베네치아 여행 이야기에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 할 까요?ㅋㅋ 기대기대^^

08·10·10 10:33

철이
불쌍한 사람...ㅋㅋ 역시 여행은 사람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주는것 같아요. 뭔가 그 장면에 감정이입이 되는기분..!!!

14·04·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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