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이야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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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이탈리아 #7] 기차는 기다리면 되고, 이야기는 들으면 되고 - 로마 ③
 미쯔    | 2009·04·28 15:46 | HIT : 6,968 | VOTE : 2,276
2002년 12월 6일. 로마.

 

“아침식사하세요.”

민박집 일하는 아주머니의 식사하라는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아침 8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었다. 이런. 뽐뻬이로 가는 기차는 8시 27분. 나는 부랴부랴 씻은 후, 돼지고기볶음이 나온 아침식탁에 아쉽지만 성의만 표한 후 기차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오늘 역시 마르지 않은 빨래 탓에 윗옷에서부터 바지까지 어제와 같은 타인의 커다란 옷을 입고...

뽐뻬이를 가기 위해서는 로마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나폴리로 가서 사철을 갈아타고 25분을 더 가야 한다. 어제 하루가 피곤하긴 했는지 기차를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잠결에도 여행자의 본능으로 얼핏 나폴리 근처까지 왔다고 느껴지자 눈을 떴는데, 기차는 정차해 있었으며, 한참을 움직이질 않았다. 조금 더 앉아 있자니, 무슨 안내방송이 나오고 승객들이 하나둘 기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채 망설이는 내게 승객중 한 여자분이 갑작스런 기차 파업으로 이 기차는 더 이상 운행되지 않는다는 말을 해준다. 나폴리까지 가려면 한정거장 돌아가서 나폴리행 기차를 다시 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것이구나. 이탈리아의 명물이라던 ‘기차파업’.


일단 다른 승객들처럼 기차에서 내린 나는 다시 한정거장 뒤로 돌아가기 위해 또 다른 기차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에 나와 같은 처지의 한국인 여행자 둘을 만났다. 한명은 나보다 나이가 위로 보이는 여자여행자였고, 한명은 나보다 조금 아래로 보이는 남자여행자였다. 우리는 어느새 일행이 되어 나폴리로 계속 갈지 아예 다시 로마로 돌아가 버릴지를 함께 고민했다. 파업이라면 괜히 나폴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가 없기라도 하면 오도가도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들 동의 했다. 로마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우리는 언제올지 기약도 없는 로마행 기차를 그 낯선 작은 역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여행일정이 모두 끝나 내일 낮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인 여자 여행자는 혹여 내일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마음이 조급해 졌는지, 철도직원들을 향해 한국말로 욕설을 퍼부으며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큰일(배낭을 잃어버린것)을 한번 겪고 난 나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마음에 동요도 일지 않았고, 다른 한명의 남자 여행자와 편안한 마음으로 로마행 기차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도 찍고 마치 소풍나온 아이들처럼 과자랑 귤도 까먹으면서 겨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씨를 즐겼다.


조바심을 내든 조바심을 내지 않든 결국 올 기차는 어쨌든 오게 되어 있다. 우리가 기다리던 로마행 기차도 오래지 않아 플랫폼에 들어섰다. 다시 로마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 서로 마주보고 앉은 우리는 각자 어떻게 유럽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돌아가며 얘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굉장히 귀를 기울이고 있고, 내 얘기를 하는 것 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훨씬 더 재밌어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한국에 있을때 나의 한 절친한 친구는 너는 항상 네 얘기만 하잖아.” 하면서 자기의 얘기는 잘 안들어 준다며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그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내가 남의 얘기는 귀담아 듣지 않으면서, 항상 내 말만 떠들어왔던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게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나는 사실 ‘설마, 내가 그랬겠어...’ 하며 그 친구의 말을 100% 인정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내 모습이 그리 익숙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니, 역시 내 친구가 옳았던 것 같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지금이라도 알게되서 다행이다. ’듣는 것‘도....... 재밌네....’

▲ 이름모를 기차역에서 로마행 기차를 기다리며 날씨를 즐기는 중


우리 일행은 오후 2시반 쯤되어 다시 로마의 떼르미니 역에 도착했고, 역 지하 슈퍼에서 간단히 샌드위치 등으로 점심을 해결한후, 어제 제대로 보지 못한 콜롯세움으로 향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그 콜롯세움에 도착했으나,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봐야할게 많다는 여자 여행자의 서두름에 나는 콜롯세움을 양껏 감상하지도 못한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영화 ‘벤허’를 찍었다는 마차 경주장을 지나, 고대 로마시대의 의회등이 열렸다는 포노로마노를 속사포로 거친후, 아직 뜨레비 분수도 보지 못했다는 그들을 위해 어둑어둑 해가 져물기 시작할 무렵 나는 어제 보았던 뜨레비 분수로 다시 그들과 함께 향했다.

 

▲ 콜롯세움앞에서
▲ 마차경주장. 이 사진은 5년후 다시 로마에 갔을때 찍은.
▲ 도시속의 폐허. 포노로마노


야경이 그렇게도 멋있다는 가이드 북의 문구에 그나마 잔뜩 기대를 갖고 있던 나는 ‘이게 바로 낚이는 거구나’ 싶었다. ‘멋이 없다’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게도 멋있는’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그렇게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다시 하나 사먹으며 낚인 기분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분수를 마주보고 왼쪽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더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이탈리안 아저씨가 완벽한 한국말로 얘기하신다.

“딸기? 많이 줘?”

 

▲ 트레비 분수의 야경. 지금 사진으로 보니... 꽤 멋진걸?
▲ 아이스크림 먹는 미쯔. 다른 사람이 찍어주면 항상 흔들려.


그리고 다시 그들의 일정에 맞춰 나는 역시 어제 이미 보았던 스페인 계단을 향해 또 걸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쇼윈도우를 기웃거리며 가다가 어느순간 나는 일행을 놓쳐버렸다.


‘아... 이런....’


그들과 함께 하면서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것은 오래 보지 못하고, 이미 보았던 것은 또 봐야 한다는것이 ‘시간이 아깝다’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이제껏 같이 떠들다 다시 혼자가 되니 순간 마음이 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아까운’ 것 보다 ‘외로운’ 마음이 아무래도 더 컸었던것 같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행하면서 배운 사고중 쓸만한 것 중 하나가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라’


나는 어차피 그들을 잃었고, 어차피 가던 길은 스페인 계단으로 향하던 길. 나는 계속해서 어제 걸었던 꼰도띠 거리의 쇼 윈도우를 둘러보며 스페인 계단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어느덧 스페인 계단이 나왔고, 내 눈앞에는 놀랍게도 두리번 거리며 나를 찾고 있는 ‘내가 잃어버렸던 그들’이 있었다.

 

▲ 스페인 계단에 앉아. 거봐. 또 흔들렸지?


다시 감격 상봉한 우리는 스페인 계단의 꼭대기의 자그만 교회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또 간만의 신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기도를 시작하였고, (종교가 없는 나이지만, 나는 항상 교회, 성당, 절에 가게 되면 하느님이던, 예수님이던, 부처님이던... 종교와는 상관없이 ‘신’께 대화형식의 기도를 하곤 했다.)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토론토의 룸메이트 Y언니를 위해서도 기도를 했다. 기도를 끝낸후,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여자 여행자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언니, 종교가 없어도 기도 한번 해보세요.”

“난 벌써 했어.”

“어떤 기도를 하셨어요?”

“지금 이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들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라고”


우리는 다시 걸어나와 포노로마로와 콜롯세움의 야경을 보며 떼르미니역으로 돌아왔다. 내일 귀국하는 여자여행자에게는 작별인사를, 로마에서의 일정이 더 남아 있는 남자여행자에게는 “내일 또 연락해요. 어쩌고 저쩌고...”

핸드폰이 서로 있는 것도 아니고, 민박집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한것도 아니고... 무슨 수로 내일 연락해? 아마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며, 그도 분명 그 것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일 몇시에 어디 앞에서 만나요.’ 와 같은 시간 약속은 여행 중에 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에서 만큼은 무엇에든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내가 나폴리에서 오는 줄 알고 기차시간 맞춰 역까지 마중 나갔다가, 내가 오지 않아서 그냥 들어오셨다고 했다. 나를 기다려 주시다니... 겨우 하루를 본 여행자인 나를 ‘기다려’ 주시다니... 그것도 저녁메뉴로 사랑스런 삽겹살을 다 구워 놓으시고.




* 지금에 와서 덧붙이는 말

: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시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남의 얘기를 듣기 전에 다시 내 얘기를 먼저 꺼내 버리는 그런 사람으로 돌아와 버린 것도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이 짧게나마 다시 여행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 콜롯세움의 야경.

 

* 갑자기 생각나 한가지 더 덧붙이는 말.

 

: 정확히 초등몇학년때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체육과목 필기시험에 주관식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었다.

"콜롯세움이란?" 나는 그때 콜롯세움이 뭔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았고, 배웠는지 안배웠는지도 모르는 완전 망통상황.
당시 내가 고민고민해서 썼던 답이 몇십년(?) 후인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초등생 미쯔의 답 -> "콜롯을 세우는 것"

비더윤즈
ㅋㅋㅋㅋㅋ콜롯을 세움이라니. 저도 비슷한 초딩시험문제의 추억이 있지만 쪽팔려서;;;

제가 이탈리아에 갔을때 나폴리에서 로마로 가는 기차가 연착된적이 있었습니다.
한시간인가 한시간반인가 연착이 되었는데, 저의 그날의 남은 일정이란 숙소에 들어가서 푹 쉬는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기다릴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옆에서 이탈리아는 시간을 지킨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흥분하여 떠들고계신 007가방에 양복입은 아저씨에게 맞장구 쳐주며 말이죠. ㅎㅎㅎ 그때 민박집 아주머니께서는 기차가 연착되지 않았더라면 민박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을 상황이었다라며 오히려 다행이라고 하셨죠 ㅋㅋ

09·04·30 14:46

jae kun lee
글도 맛나게 ㅆㅡ시네요~~~

12·03·2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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